안 마신 사람은 혹시 있어도 한 잔만 마신 사람은 없다!
이런뉴스(e-runnews) 김삼성 기자 | 전 세계 200여 국가에서 매일 20억 잔, 초당 2만 잔이 넘게 팔리는 C콜라가 미국의 남북전쟁(1861~1865) 이후 부상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 비교적 적은 돈으로 아픔을 덜어주고 활력을 찾아주기 위한 매약(약효가 있다고 주장하며 판매는 약)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당시 미국의 약재사 존 스티스 펨버턴(1831~1888)은 포도주나 와인이 들어간 음료를 인용해 펨버튼의 프렌치 와인 코카라는 매약을 만들었지만, 1886년 애틀랜타(미국 남동부 코카콜라의 고향) 금주법 시행으로 인해 알코올 성분을 빼고 코카잎(추출성분)과 콜라 열매 성분에 탄산수와 설탕 등 첨가물을 넣고 섞어 만든 게 지금의 C콜라가 됐다.
펨버턴의 회계사였던 프랭크 메이슨 로빈슨이 C콜라라는 이름을 만들고 자신의 필기체로 C콜라 로고를 만들었는데 130년이 지나는 지금까지 그 로고가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보면 미국의 C콜라에 대한 깊은 사랑을 엿볼 수도 있다. 이후 탄산음료 매장을 운영하며 남녀노소 인기리에 판매하던 컵 콜라는 애틀랜타 전역에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콜라를 만든 펨버튼이 3년만에 암으로 사망하고 이어 에이서 캔들러(41대 애틀랜타 시장)가 당시 치열한 경쟁을 뚫고 2.300달러로 C콜라의 모든 권리를 가지게 된다.
캔들러(C콜라 창립주)는 1892년 C콜라 컴퍼니 주식회사를 설립해 생산량을 늘려 콜라의 대중적인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가격을 5센트로 고정하고 최초의 무료쿠폰을 통해 콜라의 부흥을 만들어 간다. 당시 쿠폰 900만 장(지금의 237억)을 뿌리는 등 다양한 홍보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며 콜라의 인기가 더욱 올라갔지만, 매장에서만 판매하기에는 한계에 도달하던 즈음 화이트헤드, 토마스 두명의 변호사가 콜라를 병에 담아 팔겠다는 제안과 함께 보틀링(제조 및 공급) 권리를 1달러(무료라는 속설)에 계약한다.
화이트헤드와 토마스는 최초의 보틀링 업체(제조 및 판매) 설립을 위해 보틀링 지분을 팔아가며 투자자를 모집해 1928년까지 1.250명의 판매자와 미국 전역 60만 개의 소매점이 생기며 전국적인 병 콜라 유통망이 생기게 되고 미국을 대표하는 음료로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1900년 보틀링 초기에 아직 이때까지 매약의 일종인 건강음료 또는 활력을 찾아준다는 이미지가 강했던 콜라는 또 다른 문제인 콜라 재료 코카잎이 문제로 제기되고 이때부터 코카잎에서 코카인 성분을 완전히 제거해 사용했으며 당시 약효에 좋다는 허위 광고도 뺀 맛있고 상쾌한 이미지를 갖추게 되면서 매약은 사라지고 청량음료로서의 진정한 콜라가 탄생한다.
이런 콜라의 인기에 힘입어 탄생한 건 유사품의 등장이다. 비슷한 로고가 부착된 유사 콜라로 인해 골머리를 앓던 C콜라는 독립적인 이미지 구축을 위해 콜라병 디자인 공모를 통해 독자적인 콜라병을 제작하는데 코코아 열매의 모양을 딴 지금의 콜라병이 1916년에 드디어 탄생한다.
1919년 어니스트 우드러프가 C콜라를 인수 이후 1923년 아들인 로버트 우드러프가 회장에 취임하며 60년간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는 일등 공신이 되는데 미국에서만 승승장구하던 C콜라는 이후 2차세계대전을 통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미국 34대 대통령) 총사령관의 제안을 받아 전쟁에 참전한 미군에게 콜라를 제공하기 위해 배송 중에 발생하는 변질 및 파손의 위험 등을 막기 위한 발판으로 아예 제조공장을 전쟁 지역에 지었다. 결과는 약 30억 병의 콜라를 제공하며 이때부터 전 세계에 콜라를 판매하는 거대기업으로의 길을 가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은 것이 ‘P콜라’라는 라이벌 콜라가 등장한다.
가족적 분위기인 마케팅과 갈증 해소를 내세워 판매하던 C콜라와는 달리 젊은 시대를 대변하며 격렬한 운동 후 즐기는 시원함을 내세운 P콜라는 C콜라의 아성을 위협하기에 이른다. 이때부터 C콜라와 P콜라의 치열한 홍보 전쟁이 시작되는데 정말 다양한 홍보와 상대를 공격하는 광고 등 상상을 초월하는 총성 없는 전쟁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다양한 마케팅과 번쩍이는 아이디어 등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미국의 아이콘으로 자리하고 있는 C콜라 모든 판매 마케팅의 전신이라 해도 무방한 C콜라 잠깐 뉴코크로 바꿨다가 미국인에 뭇매를 맞고 다시 클래식 코크로 돌아온 C콜라 2012년까지 브랜드가치 1위를 차지했지만, 이제는 IT기업들에 밀리는 추세다. 그래도 전 세계 음료 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브랜드로 단연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후 로베르토 고이수에타를 거쳐 현재는 제임스 퀸시가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앉아있는 C콜라 여러분이 걱정하는 코카입 성분? 초기엔 코카인이 포함돼있는 코카 잎을 재료로 사용했지만, 현재는 정부 관계자 감독하에 코카 잎을 삶아서 의료용 코카인을 의료 기관용으로 회수한 후, 코카인이 거의 제거된 성분만 사용한다. 따라서 콜라 특유의 향미를 위해 고농도의 카페인이 사용된다고 전해진다. 아마도 콜라 중독이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됐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C콜라의 유명한 속설이 있는데 바로 C콜라 레시피 비밀 컨셉이다. 레시피는 세계에서 두 명만 알고 있다고 하는데 확실치 않으며, 그 레시피는 지금도 애틀랜타 은행 비밀창고에 보관돼 있다는 것 또한 콜라의 유명세를 확산시켰지만, 아직 확인된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아이러니한 건 콜라의 또 다른 라이벌인 오렌지색 음료 환타는 전쟁에서 패한 독일이 만들었는데 2차세계대전 직전 독일의 콜라 생산시설이 중단되며 콜라를 대체하기 위한 음료수로 개발됐다. 결국 비극적인 전쟁으로 인해 만들어지고 다시 전쟁으로 인해 전 세계에 퍼진 걸 보면 기업과 전쟁은 서로 상생한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여기까지가 여러분이 좋아하는 청량음료 콜라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오*씨나 사*다를 선호한다.